저녁 8시경 도착한 아이슬란드의 첫인상은 너무나 “밝다”였다. 북극에 가까운 나라들은 여름 시기에 백야를 겪는다. 세계 최북단의 수도를 가진 아이슬란드의 밤은 12시-3시, 약 세 시간 남짓이고 이마저도 그리 어둡지 않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밝은 날씨 속에서 공항버스를 탈 수 있었다.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지는 버스를 타고 설래는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시내로 가 하루 묵을 Hlemmur Square라는 호스텔을 향해 갔다.


  비도 오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 얼음 왕국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그럴까, 5월의 아이슬란드는 그리 춥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에서 호스텔까지, 10여 분 걸리는 거리를 주변 곳곳을 둘러보면서 거닐었다. 전체 인구 30만 명 중 2/3가 산다는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는 자연보단 도시 느낌이 물씬 풍겼으니, 그리 낯선 공간은 아니었다.


  호스텔에 체크인하기 전 1층 빌딩에 있는 Chinese Noodle 집 Noodle station에서 Asian style 라면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고, 숙소에 체크인했다. 미친 물가를 자랑하는 아이슬란드 호스텔 중에서 가장 싼 가격을 제공했던 Hlemmur Square (하루에 약 2만 원). 기대를 안 하고 가서 그랬는지 시설이 꽤 괜찮았다. 몸이 많이 피곤했지만 Hallgrimskirkja 라는 레이캬비크 성당의 야경을 놓칠 수 없어서 노래를 들으며 냅다 나갔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이 성당은 많이 봐왔던 유럽의 고딕성당들과는 또 다른 세련미가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성당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돌아와 잤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성당 Hallgrimskirkja.


대망의 워크캠프 시작 날. 집결 시간은 9시였고, 호스텔에서 조식을 먹고 나가면 되겠다고 생각되어 가격을 물으니.. 조식만 14유로. 진짜 미친 물가 맞다. 장난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비싸서 못 먹겠다고 하니 호스텔 직원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시나몬 번 카페를 추천해줬다. 짐을 부랴부랴 싸고 나와 빵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집결지에 도착. 제일 먼저 도착해 부푸는 기대감을 애써 누르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 짐을 부랴부랴 끌고 오는 한 금발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Artur라는 친구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Gap year*를 보내고 있는 친구이다. 잠시 뒤 Jake라는 미국의 New Orleans 출신의 친구가 도착했다. 이 친구는 의사가 되려고 공부 중이고, 한 학기 남은 중 봉사활동시간을 채우러 왔다고 했다. 나랑 2주를 함께 할 캠프 멤버는 이 둘이 끝이었고 곧 Farm으로 데려다줄 캠프 관계자들이 와서 우리를 픽업했다. 


     Gap year* :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1년정도 봉사, 여행, 창업 등을 통한 진로활동을 하는 시기. 여러 서구 나라 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Gap year를 갖고 이런 친구들이 워크캠프에도 많이 찾아 오더라.


 


     네덜란드의  Almere 지역에서 온 Artur Hofma 



     미국의 New Orleans 지역에서 온 Jake Rovira


 시내에서 30분 정도 가니 광활한 자연이 펼쳐졌고, 그 자연 한 인적 드문 구석에 우리 농장이 있었다. 이름은 Worldwide Farm. 집은 2층으로 돼 있는 귀여운 공간으로 1층은 큰 소파와 식탁과 부엌이 있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새끼 고양이 두 마리와 엄마 고양이 Monica, 늠름한 개 Frosti가 있었다. 2층은 잠을 잘 수 있는 2층 침대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창문이 있는 2층 침대를 찜했고 짐을 풀어놨다. 짐을 푼 후 공장을 둘러 보니 닭을 키우는 공간과 아직 공사가 한창인 Greenhouse, 텃밭이 있었다. 



     약 열흘갈 생활하게 될 Worldwide Farm. #enjoy WF


 내가 도착한 날짜는 금요일. 이 프로젝트는 2주씩 봉사자들이 끊김 없이 순환되며 이전 팀의 봉사를 인계받는 형식으로 돼 있다. 그래서 우리가 도착한 금요일에는 주말까지 활동하는 전 프로젝트 멤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매우 다양한 국적의 봉사자들이 있었고 유독 일요일까지 함께 지내며 친해졌던 캠프 리더 NicolasOlivia가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이탈리아에서 EVS*를 통해 온 봉사 리더로, 아이슬란드에 있는 여러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봉사를 한다고 한다. 

 

     EVS* : EVS는 European Volunteer Service의 약자로 유럽국가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다른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간 (2-12 months) 사이에 원하는 나라로 가서 봉사 프로젝트를 참여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캠프 리더 NicolasOlivia. (photo by Taeyi)


 주말까지 우리 팀이 할 일은 없었으므로 일단 친구들과 친해지며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단 한 명의 아시아인으로 쉽지는 않았으나 (러시아 친구가 한 명 있었으나 자기는 유럽인에 가깝다고 했기에..) 열심히 친해지려 노력했고, 안되는 영어로 열심히 소통했다. 정신없이 수다를 떨며 있다 보니 금방 저녁 시간이 찾아왔고, Nicolas가 해준 Homemade Pizza를 먹으며 또 수다를 떨었다. 정말 얘네는 별것도 아닌 주제로 쉴 새 없이 떠는구나를 실감하게 해준 순간.. 내가 쓸 수 있는 영어가 고갈나니 너무 피로가 밀려왔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지내보자 다짐하며 먼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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