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CAMP” in Iceland 05. Farming
주말에 푹 쉬고 놀고 하다 보니 농장일은 언제 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의문을 단번에 씻어줄 노동들이 시작되었다. 내가 참여한 봉사의 이름은 <Sustainable living in Reykjavik and the WF Farm>으로 아이슬란드의 생태계를 존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와 더불어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봉사가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는, 이 봉사활동의 존속을 위한 일들이 필요했다.
내가 봉사하게 된 농장은 Greenhouse가 있었지만, 뼈대와 비닐 지붕과 흙벽밖에 없는 아직 농작물을 재배할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내가 하게 될 봉사는 다음 봉사자들이 이곳에 식물을 키울 수 있게 그리고 관리할 수 있게 하여 지속적으로 사람 손이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우리는 총 봉사 기간 동안 Greenhouse에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텃밭과 울타리 그리고 선반 등을 만드는 일을 했다.
보수하기 전 Greenhouse.
서울 토박이고 큰집도 서울인 나는 삽질이라곤 군대에서밖에 해보지 않았고 농장 일이란 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에서 Product Designer로 일하고 있는 Frederyk의 친절한 오더에 따라 작도, 톱질, 망치질, 드릴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해보았다. 이런 이색적인 경험들을 ‘아이슬란드’에서 아시아인이라곤 나밖에 없는 이곳에서 함께한다는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었다.
또 우리는 농장 뒤에 온갖 공구들을 보관해두는 Tool shed에 지붕을 보수하는 일을 했다. 지금 만들어놓은 구조로는 나무 틈으로 비가 샜고, 우리는 이를 해결하고자 지붕을 다 뜯어내서 새로운 형태로 지붕을 올렸다. Tool shed 옆 닭장 청소는 덤으로 :)
열심히 지붕을 뜯던 순간.
나는 이런 생소한 작업들을 이 친구들과 해나가며 그들의 문화를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까지 총 16년 동안 우리나라 전매특허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Born to be 한국인이다. 이 교육을 받아온 나는 메뉴얼이 있는 일, 정답이 있는 일들을 아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시키는 일을 금방 이해하고 숙달하여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고 '나'의 분야에 한에서 비교적 빠른 성장을 맛볼 수 있다. 반면, 정답이 없는 일. 창의적인 사고를 요하는 일과 정답이 없는 질문 등을 헤쳐나가는 대에는 난해함을 겪는다. 따라서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질문과 답변이 수업의 주를 이루며 이 과정에서 토론 능력과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내세우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유럽의 교육 문화를 동경한다. 나는 이러한 교육의 차이가 한 조직 내에서의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생각이라 포스팅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이과 공대 출신의 항상 어떠한 정답을 찾아내는 교육을 받아온 내가 농장일을 해나가며 느꼈던 감정들을 적어보자 한다. 일단 모든 농장 작업들이 토론을 거쳐 진행되었다. 리더들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겠으니 열심히 따라가려고 생각했던 나에겐 조금 생소한 환경이었다. 사실 리더들도 어떠한 정확한 메뉴얼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의견을 반영해서 같이 '우리들의 농장'을 꾸려나가자는 마음이었다. 나에게 먼저 물었다. “Jay, 우리 어떤식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보면 좋을까?” 이 질문에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농장일을 해본 적도 없었고, 어떠한 울타리 도면을 설계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장 생각해낸 내 의견이 그렇게 좋은 의견도 아니었을 뿐더러 혹시나 비웃음당할까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 대답을 못 했다. 그런데 나보다 많게는 5살까지나 어린 같은 캠프 봉사자 미국인과 네덜란드인은 자기들 나름의 의견들을 여러 개 내놓았다. 물론 모든 의견이 그리 대단한 의견도 아니었고, 거의 수용되진 않았지만 좋은 의견들을 수렴해서 리더들과 함께 방안을 내세우고 일사천리 일을 진행시켰다. 어설프게 시작했지만, 울타리를 하나하나 올리다 보니 나름의 구색을 갖췄고, 우리가 설계한 우리들만의 Greenhouse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붕 보수도 마무리했고, 이러한 일련의 작은 프로세스들이 앞으로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하고 또 외국으로 나가 일을 해보고 싶은 나에게 큰 지침이 되었다. 앞으로 내 회사에서만큼은 정답도 없는 일에 내 의견을 표출하는데 두려움과 창피함을 느끼지 않으리라.
어느새 구색을 갖춘 우리들의 Greenhouse.
또 다른 관찰 포인트는 ‘과정’을 지켜봐 주는 문화였다. 사실 농장을 보수하는 작업은 모두에게 생소한 작업 투성이였다. 다행히 Product Designer인 Frederyk의 경험을 토대로 어느 정도 방법을 찾아가며 익숙해질 수 있다. 내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방법’을 알려주는 Frederyk의 자세였다. 망치질을 한 예로 들어본다. 사실 망치질은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정확한 노하우만 알면 그렇게 위험하지 않게 못을 박을 수 있다. 근데 망치를 처음 잡아본 사람한테 그 자세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우리 중에 젤 어렸던 네덜란드인 Artur은 망치질을 많이 해본 경험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 어설픈 동작으로 망치질을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더 편하고 안전해!!"라고 알려주고 싶더라. 하지만 그 순간을 옆에서 지켜보는 Frederyk이 너무 인상 깊었다. 우리 중 누구보다 망치질의 경험이 많고 노하우가 많은 친구였고 그 순간 알려줄 수 있는 지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말없이 지켜보았다. Artur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망치의 각도와 잡는 손의 동작을 여러 번 바꿔가며 나름의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고 결국 보란 듯이 깔끔하게 못을 박았다. 그때 Frederyk이 한마디 건넸다. “Good job, Artur!”. 이 사건은 또 ‘정답’ 강박증에 걸려있는 나에게 크나큰 교훈을 주었다. 무언가의 '방법'을 알려줄 때 꼭 단일의 '정답'이라는게 있을까? 물론 이 세상 물리의 해석과 이해, 예측을 위해 정의내리는 수학적, 과학적 정답은 필요하다. (그 마저도 요즘은 대부분 확률로써 정의되긴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적인 부분에선 정답이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자신이 숙련된, 편한 방법이 그리고 남들이 항상 하는 방법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냥 하나의 Frame일 뿐이지. 왜 나는 항상 내가 배워온 메뉴얼이 정답이고 그에 못 미치는 ‘다름’은 인정하지 못했을까. 남에게 내가 하는 방식이 정답이니 그대로 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실례이고 부끄러운 일일까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크고 작은 행동, 도전, 의견, 성취 같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존중해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되,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를 맞춰나가는 이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